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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09-26 04:49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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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지 않게……. 어떻게?’ 리즈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자못 순진해 보여 헤르시스가 픽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와의 스킨십이 싫은 건 아니잖아. 그렇지?” “물론 아니죠.” 리즈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다음 말도 주저 없이 할 수 있었다. “스킨십만으로 어떻게 만족해요?” 물론 그와의 스킨십은 황홀했다. 그의 손끝이 스치고 지나간 부분은 솜털이 바싹 촉을 세웠고, 입술이 머물다 간 곳은 혈류가 발갛게 쏠렸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에 리즈는 너무 황홀한 것을 경험해 버렸다. 인간이 치달을 수 있는 감각적 쾌락의 최고치를 겪은 리즈에게 그보다 아래 단계에서 멈추는 것은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만족할 수 있다면?” 헤르시스의 색기 어린 금빛 눈동자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만족할 수 있다면 할 건가?” “그게 무슨…….” 리즈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그가 상체를 들고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이 닿자마자 풀어지는 것이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벌어진 셔츠 자락 사이로 완만한 가슴 근육의 능선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복근의 골짜기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남성적인 반라에 리즈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욕망에 굴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굴복하지 않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 같았다. 그가 가운 매듭 한쪽 끝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그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리즈는 억지로…… 억지로 떠올렸다. 배신자의 문장을 가슴에 단 병사가 내려친 칼날이 그의 몸과 하나가 되던 순간을. “안 돼요.” 리즈가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돼.” 그가 그 팔을 가볍게 떼어 내더니 깍지를 껴서 내리눌렀다. “스킨십이 싫은 건 아니랬잖아.” “그건 그런데…….” 제 공단 가운 매듭이 완전히 풀리고, 젖혀진 가운 자락 사이로 휑하게 드러나는 맨살을 느끼며 리즈가 절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떡하시려고요.” 헤르시스가 리즈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금방 알게 돼.” 그의 입술이 뺨에서 귓불로, 귓불에서 목덜미로 내려오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기대해.” 리즈는 감각은 그의 손길과 입술에 잠식당하고, 이성은 그가 낸 수수께끼를 푸는 데 쏟아붓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남자,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리즈가 수수께끼를 풀었을 땐 헤르시스의 입술이 본래라면 멈추어야 할 곳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버린 뒤였으니. 그때는 이미 감각이 이성을 집어삼키고, 다리는 그의 굳센 팔에 붙들린 뒤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자꾸만 뒤로 휘어졌다. *** 햇살이 벽면에 창틀의 격자무늬를 새겨 놓았다. 비둘기가 날아와 창틀에 앉자 그 그림자도 벽면에 고스란히 비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개를 파드득거리는 것이 꼭 불 꺼진 방에서 펼쳐지는 손그림자 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리즈는 한옆으로 돌아누워 팔베개를 하고서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했다. 간밤에 저와 헤르시스의 그 요망한 애정 행각도 저런 그림자로 비쳤었다. 자꾸만 터져 나오는 신음을 손등으로 틀어막고서 고개를 돌렸을 때, 벽면에 꿈틀대는 그림자 한 쌍…… 아니, 그림자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속이 새카맣게 채워진 굴곡 있는 몸의 그림자는, 오히려 부분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제 몸을 볼 때보다 더 야릇함을 느끼게 했다. ‘만족시켜 줄 테니 기대해.’ 그는 약속을 지켰다. 리즈는 조금 창피했을지라도 색다른 만족감을 느꼈다. 그것도, 안전하게. 하지만 역시 여러 번은 힘들었다. 밤새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 감각 세포가 녹진한 피로를 부르짖고 있었다. 리즈는 그림자놀이에서 시선을 거두고 똑바로 돌아누웠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에 뒤이어 로사가 들어왔다. “폐하. 식사를 이곳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내려가서 먹을게.” 리즈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리넨 이불이 흘러내리며 분홍빛 흔적이 가득한 상체가 노출되었다. 로사의 뒤로 들어온 세이라가 재빨리 얼굴을 돌리며 다른 할 일을 찾는 동안 로사는 공단 가운을 가져와 리즈에게 둘러 주었다. 로사는 혈기 왕성한 젊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감각한 표정으로 가운을 입혀 주고 매듭까지 완벽하게 지어 주었다. 세이라는 살짝 틀어진 화병을 정리하곤 때맞춰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세이라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폐…… 폐하.” 그녀가 리즈의 다리를 가리켰다. 리즈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리에 뭐…… 아!”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한 줄기의 혈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로사도 조금 놀랐다. “얼른 수건과 물 대야를 가져오너라.” “예, 로사 님.” 세이라에게 지시하고서 로사는 새 속옷과 달거리 대를 가지러 옷방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리즈는 다리를 가로지르는 붉은 선을 가만히 보았다. 아쉬움에 절로 쯧-, 소리가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허락할 걸 그랬네.’ 물론 지난밤은 지난밤대로 좋았지만, 감각의 전율을 동시에 공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폐하. 많이 기다리셨지요?” 세이라가 물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대야를 리즈 앞에 놓고서 수건을 적셔서 종아리에 갖다 대는데, “……!” 갑작스레 리즈가 움찔하니 세이라가 당황해서 물었다. “호…… 혹시 물이 차가우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리즈가 아랫배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갑자기 콕콕 찔려서.” “아…… 그거요.” 세이라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월경통이시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그날마다 그래요.” ‘결혼하더니 체질이 바뀌었나?’ 리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기는 불규칙적이라도 통증은 한 번도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 황제를 알현하는 관리들의 얼굴이 체념에 젖어 있었다. 지난번에 명받은 군수품 현황과 주둔지까지의 최단 거리, 역참 실태, 그리고 신속한 연락을 위해 잡아 온 조류 개체 수를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 보고였다. 보고서를 황제 앞으로 내미는 그들의 얼굴에선 일말의 기대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빨리 퇴짜 맞고 여섯 번째 보고서를 작성하러 돌아가는 길에 시가나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런데. “수고했어.” “……?” 고개를 숙이고 있던 셋의 얼굴이 동시에 들렸다. “폐, 폐하 지금 뭐…… 뭐라고 말씀…….” “수고했다고. 이만 퇴근해.”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따끈한 이것은 설마…… 아니겠지. 명색이 사내가 되어서 이 정도에 눈물이라니. “퇴근하기 싫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황제의 마음이 바뀔세라 세 사람은 우당탕탕 집무실을 벗어났다. “진작 좀 이렇게 해 올 것이지. 하여간.” 헤르시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옆을 돌아보며 마지막 남은 한 명에게도 명했다. “너도 이제 그만 퇴근해.” 하지만 그는 쏜살같이 사라지는 대신 주군의 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이샤르?”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요.” “그래?” 헤르시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났다. 남녀 할 것 없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고혹적인 미소였지만, 이샤르는 왠지 모를 불쾌감만을 느꼈다. 오늘따라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장미 향기는 더욱 심기에 거슬렸다. “너도 결혼해 봐.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날 수밖에 없을걸.” “…….” 뒷머리를 깍지 낀 손으로 받치고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대는 것이, 마치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오만한 충고 같았다. 더 듣고 있다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엘크미네 왕국이 군사 협조를 요청해 왔습니다.” 이샤르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 헤르시스가 깍지 낀 손을 풀어 가슴 앞에 팔짱을 꼈다. “희한한 일이군. 자신들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자존심을 세우더니, 왜 태세를 전환한 거지?” 엘크미네 왕국은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소왕국이지만 대륙의 그 어떤 국가들보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였다. 그들에게 천 년이란 역사는 자존심이었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는 뜻이겠죠. 위로는 테렌디스 왕국이 무서울 정도로 세력을 키워 압박하고 있고, 아래로는 르로드 섬이 약탈할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대제국과 손을 잡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렇겠군.” “어떻게 할까요?” 헤르시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요청 수락하는 대신 우리에게 말 천 필을 보내라고 해.” “……예?” 이샤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크미네 왕국의 말은 그들이 어느 나라와도 공유하지 않은 자긍심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천 필이나…… 기껏해야 비단이나 사프란 같은 공물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자고로 협조를 요청할 땐 그 정도의 대가는 지불해야지? 다른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 사실 헤르시스의 말은 맞았다. 루젠시아처럼 광활한 영토를 가진 제국은 지치지 않는 말이 필요했지만, 정작 보유하고 있는 품종은 덩치만 크고 체력이 달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죠.” “참, 이샤르.” 이샤르가 물러나려던 찰나 헤르시스가 불렀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는 것이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 듯했다. “황후가 요즘 입맛이 없는 것 같더군.”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먹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만들어 줄 사람이 없나 봐.” “그래서요?” 이샤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좀 만들어 주라고. 너 못 만드는 거 없지 않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한 번 맛보고 재현해 내지 못한 요리는 없었다. 스타베팅 땐 귀로 듣기만 하고도 맛과 모양을 정확히 구현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 능력을 쓰기는 싫었다. 이렇게…… 강요받는 모양새로는. “일단 황실 주요리사한테 먼저 말하라 하십시오. 만약 그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이샤르가 단안경을 추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땐 제가 나서겠습니다.” 황궁 요리사도 못 만드는 음식이 어떤지 궁금하긴 하니까. 단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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